.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 김태관 지음
. 홍익출판사 펴냄
. 이야기
장자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놀란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꽉꽉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세상에 초연하면서도 세상에 가깝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아나키스트적이면서도 개인의 가치를 지극히 여긴다는 점에서 노자의 도덕경하고는 차이점을 느끼게 된다.
. 이야기
장자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놀란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꽉꽉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세상에 초연하면서도 세상에 가깝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아나키스트적이면서도 개인의 가치를 지극히 여긴다는 점에서 노자의 도덕경하고는 차이점을 느끼게 된다.
장자에서 역설하는 것은 지극한 자유를 즐기고 심연을 향해 한 발 내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뜻일 것이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꼼짝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네.
먼지와 물로 대변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기저일 것이다. 그러나 대나무
그림자와 달빛에 현혹된 마음이 진심(眞心)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원효가 해골의 물을 마시고 깨달은 것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세상은 정말 메트릭스이며 우리모두가 ‘네오’임을 깨닫는 것이 삶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가 듣기로 진나라 왕은 병이 나면 고름을 짜주는 의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핥아주는 의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고 하더군. 치료하는 곳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수레를 더 많이 준다는 것이야. 자네는
얼마나 더러운 치질을 핥아주었기에 수레를 백 대씩이나 받았는가? 냄새 나니 어서 꺼져 버리게!”
송나라 조상(曺商)이라는
자에게 장자가 한 말이다. 우리가 쌓아온 치부가 치질을 핥은 대가란 말인가? 그렇다면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는 썩은내가 진동할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하고 싶은 말은 소유를 거부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를 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며 이를 실천했을때 치부는 치질로 보이는 것이리라.
장자를 읽다보면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노자 도덕경에서는 무편무당한 통치자의 마음가짐을 강조하며 오히려 치자(治者)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자조차도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이상적인 형태로 여길만큼 인위적인 통치를 최소한도로 축소시키고
있다. 현재사회의 문제는 어쩌면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하고 국가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장자의 자유는 마음대로의 자유가 아니며 오히려 천길 낭떠러지를 향해 한발을 내딛는 아득한 용기의 다름아니다. 자유는 달콤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남에게 국가에게
의지하고자 현재의 정치체제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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