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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국가



국가
2012 12 27일 목요일
ㆍ 기사제목 몇개가 눈에 들어온다.

병역혜택후 모르쇠대표팀 구성 채찍필요하다.
김무영 한국인 자존심 하나로 12년간 일본 팀서 버텨 태극마크 달고 日 꺾고 싶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야구. 그중에서도 유일하다시핀 국가대항전인 WBC는 정규시즌과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유명선수들의 출전이 드물어지고 있다. 대회가 열리는 3월에 무리하게 되면 정규시즌, 다시말해 1년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에게 1년은 일반사람들의 1년과는 정말 다르다. 어쩌면 운동선수는 1년 잘한 것으로 평생을 먹고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WBC에서의 병역혜택은 그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였다.
 이제 병역혜택은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WBC출전에의 의지는 많이 약해진 것 같다.
 그렇다고 강제력을 가진 규약을 만들어야한다는 이야기 또는 거부하는 자의 병역혜택을 박탈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굳이 신뢰보호의 원칙’, ‘소급입법금지의 원칙등의 헌법원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국가를 위해서는 몸바쳐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기저에서 느낄 수 있다. 왜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우리의 전부를 몸바쳐야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이 우리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내가 먹는 모든 음식을 모두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님과 같이 말이다. 국가에 대한 봉사 또는 헌신은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소득을 얻기 때문에 그 일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정당성을 찾는 기부행위와 같은 의미에서 내 삶의 틀을 만들어주는 국가에의 기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전부를 요구하게 되면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이다. 헌법이 그렇게 세밀하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폭주할 경우 국민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뼈저리게 느낀 근대 역사의 산물이다. 개인을 조금이라도 희생하는 것을 요구하는 그 어떤것이라도 두세번 아니 몇번이라도 재검토를 해야하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그 정당성이 갖추어진다. ‘레미제라블의 붉은 깃발은 장식이 아니다.

2012년 12월 20일 목요일

보이지 않음의 보임

보이지 않음의 보임
2012 12 20일 목요일
ㆍ 우주가 수축하는지 팽창하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암흑물질이라고 한다.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그 '무엇'인가가 우주의 미래를 결정함을 알게 되면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명확하게 느끼게 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언론, SNS 등 수많은 미디어의 흐름과는 정반대되는 결과는 우리의 인식의 한계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제한하는지를 보여준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침묵하던 다수의 선택이 결과를 이끌어 냈음이리라.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노자, 도덕경 5

芻狗(추구)는 제사때 쓰이는 임시의 물건이라고 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소용이 낮은 물건을 일컬음이라. 천하는 ()하지 않으므로 만물을 쓸모없게 여긴다라...성인도 마찬가지이고... 어쩌면 하늘의 이치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대로 올바르게 또는 적합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리라는 것이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하늘'이 존재한다고해서 단순히 인간의 선악판단에 따라 은하계를 움직이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인간 중심적이다.

하늘의 도를 논할 필요는 없으리라. 모든 것이 우리의 業報(업보)이리라. 너와 나의 구분을 없애야하리라.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버스와 빈 배


버스와 빈배

ㆍ 2012년 12월 15일 토요일

ㆍ 서울을 나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을 향한다. 기다리던 22번버스가 오기 전에 M6117번 버스가 눈에 띈다. 기쁘다. 그리고 내 마음이 놀란다.
 M6117번은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 시간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기대하지 않던 바를 얻게 되니 내 자신이 기쁜 것 뿐이다. 사람 마음은 이렇듯 가벼운 것일까.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 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까는 화 내지 않고 지금은 화 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빈 배처럼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기쁘고 슬프 것은 놀랍게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 뿐이리라. 차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