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은 조선시대정치의 특징이라고 인식되어진다. 이를 일제식민사관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많지만 당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쟁은 정상적인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동서인이 분리된 선조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에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조선이 거의 파탄직전까지 몰린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동인과 서인들은 이에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상대방을 헐뜯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결국 상대에 대한 적대는 피바람을 몰고오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의 등쌀에 역대 왕들은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경종독살설이 유포된 것,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것, 정조가 급서한 것, 효명세자나 현종이 본인의 목소리를 낸 직후 세상을 떠난 것 등 권력을 위해서 민생안정은 전혀 돌보지 않은 당쟁의 부작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예송의 대표적 주자였던 송시열과 윤휴의 경우만 봐도 이들의 학문적 성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인간적인 결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한문적 도덕적 우러름을 받은 것은 공통적이다. 이에 비해 현재의 정치는 이러한 최소한의 도덕성도 결여되어 있다. 심지어 탄핵을 받았을 경우 조선시대 관리들은 형식적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부덕함을 이유로 사직하는 것이 관례였음에 비해 요즘은 ‘너희들이 뭐를 알겠느냐’하며 무시하는 것이 기본이며 심지어는 국민들의 자질을 폄하하는 것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당쟁의 배경이 된 사림정치의 큰 특징은 당하통청권 및 한림회천권과 같은 인사권의 분배이다. 국왕이 중심인 사회에서 국왕을 제외하고 신하들이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보통 견제장치가 아니다. 또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으로 대표되는 언론3사의 경우 감주의 지휘를 받았음을 볼 때 시스템적으로는 상당한 견제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집권당의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사법부에 대한 인사권도 행사할 수 있음을 볼 때 시스템적으로 결코 과거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으며 현재 정치인들은 최소한의 염치도 없음을 볼 때 과연 현재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당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가지 새롭게 안 사실은 중국 사신에 대해서 뇌물을 주는 관습이 광해군때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명청교체기에 당위성만으로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뇌물이 일상화된 것이 이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닌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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