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가 없으면 방법이 없다. 잡아먹으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호랑이를 한 번 물어도 괜찮을 것이다. <루쉰>- 루쉰의 기질과 정말 잘 맞는 말이다. 억지스럽지 않지만 순응하지만은 않는 조용하지만 기개가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순응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바뀌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또한 불이익을 받는다. 어찌할 것인가.
- 세간의 번뇌는 활활 타는 불과 같으니, 그 불길이 어느 때 멈추겠습니까. 시끄러운 곳에서 바로 공부하는 일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남송시대 대혜스님>- 공부에는 때와 장소가 없다. 맞는 말씀이다. 해야하겠다고 생각하는 바로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 비트겐슈타인의 대단한 점은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논고>를 아무 거리낌없이 부수어버렸다는데에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남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언제나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가 지향한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많은 재화를 가진 사회라기 보다는 자본주의보다 사물에 대하여 더 다양한 감성을 생산하는 사회, 사물에 대해 더 다양한 척도를 가진 사회였는지 모르겠다.
- 사물을 객관화하지 않고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이야기일텐데 그렇다면 소유를 추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 모든 재화와의 관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인간은 너무나도 작은 그릇일 터이니 말이다. - '신'은 생의 반대 개념이며 해롭고 유독한 개념입니다. 영혼이나 정신, 불명의 영혼이라는 개념은 신체를 경멸하는 것이고 또 병들게 하지요. 그것은 생에 있어 중요한 많은 것들, 가령 영양, 주거, 정신적인 식사, 질병의 치료, 청결, 기후 등의 문제를 섬뜩할 정도로 경솔히 다룹니다.<니체>
- 고대 금욕주의를 끌어들인 것은 욕망을 줄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욕망하라는 것이었다.
- 자본주의가 욕심이 많아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삶을 욕망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뜻이리라. 우리의 삶의 가치를 단순히 GDP에만 두면 안된다는 이야기이리라. - 잘못을 좀 잊읍시다. 양심이 둔해서가 아니라, 날카로우면서도 잊는 겁니다.<함석헌>
-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도마복음 42절>
- 예수님은 태생부터 유목인이었나보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함을 강조하신다. 이상하게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또한 현대인의 문제인 것같다. - 서양인은 임종 때에 곧잘 의식 같은 것을 행하여 타인의 용서를 빌고 자기도 타인을 용서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말한다.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루쉰>
- 참으로 솔직한 표현이다. 좋은게 좋은것이 아니다. 아닌것은 아닌 것이다. - 문제는 법질서에 대한 강조가 시장 자체의 실패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 국가, 공동체 등 어떠한 단체를 강조하는 관점은 필히 폭력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그 밖에 있는 소수자나 다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에 대한 허용은 절대 없다. -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시민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대체로 지배질서를 재생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 다수에 의한 폭력의 다름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형태의 집단 교육은 정말 고민할 부분이 많다. - 예수를 믿는 사람, 그 믿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 장자에 나오는 말과 유사하다. 성현의 말씀을 읽는 것은 죽은 것도 다름없다. 껍데기를 받아들이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말씀'들은 우주로 흩어지는 것이 대다수인가 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철한간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어쩌면 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깨어있어야 더욱 재밌다. 철학이 필요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