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와 관련한 서적이 있으면 대체로 찾아보는 편입니다. 신간이 나와서 관심을 가지고 구매하였더니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라는 책을 쓴 임건순님이 쓰신 책이네요. 묵자에 대한 책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매우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같은 저자라고 하니 더욱 애정이 갔습니다.
본 책의 구성이 일단 재미있습니다. 제자백가 사상가들을 '家'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시대별로 배열하였습니다. 특히 안자, 오기, 신도 등을 공자나 맹자와 같은 중요도로 배열했다는 것이 매우 신선했는데요 총13명의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건순님은 책은 우선 읽기에 재미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읽으면서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형식보다는 역시 즐거움이 더욱 와닿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안자, 장자, 한비자에서 인상적인 것은 해학과 기지입니다. 특히 안자의 경우는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어서 더욱 즐거웠다고나 할까요.
안자는 공자가 극찬한 제나라의 재상인데요 그런데 놀랍게도 유가라기 보다는 도가계열에 가깝다고 합니다.(물론 도가로 대표되는 노자, 장자가 후시대의 인물이니 안자가 오히려 도가의 선조라고 하겠습니다.)
' 신하는 군주라는 개인에게 충성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적 기구인 사직을 위해 일하고 충성하는 존재다. 그리고 군주 역시 사직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일 뿐이며, 사직을 위해 공적 논리에 충실히 기능해야 한다.'
왕의 성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직'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안자는 시스템을 강조한 시초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신하는 군주가 공적 역할에 충실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군주를 선택할 수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맹자의 역성혁명론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오기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불패의 명장인 오기는 병가로 분류하기 쉽지만 사실공동체의 애정에 대해 강조한 유가로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오기는 군주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네가지 덕을 말하며 인민을 포용하고 민심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대비해야 하지만 철저하게 피해야 하며 공동체 구성원을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和를 강조함으로써 그 유지에 힘쓰는 점은 관중의 경제에 대한 강조와 비슷한 면도 보입니다.\
임건묵님은 상앙, 한비자 등 법술지사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입니다. 이들은 전제군주제를옹호한 사상가가 아니라 오히려 전제군주를 견제하고 일반 백성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는 국가의 힘을 증대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수준의 군주를 상정하는 점에서 현실에 부합한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秦나라가 통일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하겠네요.